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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The하기/내멋대로 영화평

[영화] 우리 선희 (Our Sunhi, 2013)






우리 선희... 영화 참 잘 봤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궁금하기도 했고 다 좋아하는 배우들이라 기대감도 컸는데 역시나 좋았어요.
거추장스럽거나 불필요한 요소들 없이 딱 표현할 것만 소박하고 간결하게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갑자기 훅 들어오는 줌인도 그렇고, 노란배경인 오프닝과 엔딩크레딧조차도 독특하게 느껴져서 이 감독님은 정말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분이구나 싶었는데요.


특히 이 영화가 청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선정적이지 않거든요.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홍상수 감독이 직접 청불 신청을 했다고 해요. 그냥 두었다면 15세 관람가를 받았을텐데 관람분위기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랬다네요.
또 실제로 배우들을 술을 마시게 하면서 촬영을 진행한다고 하더라구요. 어쩐지 영화에서 술자리 장면들이 나오는데 배우들이 다들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 있어서 정말 마셨구나 싶었거든요. 여러 요소들 덕분에 편하게 우리주변의 일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답니다.



영화 <우리 선희>는 선희가 대학원 진학을 위해 추천서를 부탁하려고 오랜만에 학교를 찾게 되고, 세 남자와 만나며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습니다. 
선희를 아끼는 세 남자는 최교수(김상중), 선배 재학(정재영), 옛 남자친구 문수(이선균)인데요. 
그 셋과 선희와의 관계가 얽혀 있는데 그들은 오랜만에 나타난 선희를 두고 서로 이런 저런 대화를 합니다.


선희는 최교수에게 부탁한 추천서에 있는 자신에 관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자, 본인이 정말 이런 사람이냐며 다시 써줄 것을 부탁하고 최교수는 다시 생각하고 써보겠다고 해요.
이후 선희는 얼마전 입봉한 문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수가 입봉했어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냥 어디론가 떠나서 쉬고 싶다는 말을 하자 선희는 이런 말을 해줘요.
  
"그러니까 변하지 말라구. 너무 변화들 할려고해 사람들. 자기 자신은 하나도 모르면서 변화는 무슨 변화야?"
"그냥 한 우물만 파. 끝까지 한 번 부딪쳐 봐. 끝까지 부딪쳐봐야 자기 한계를 알고 자기가 누군지 아는 거지"

   


선희는 문수와 있다가 급히 자리를 떠나고, 문수는 선배 재학을 찾아갑니다.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대사들이 있는데 피식하고 웃게 만들어요.

문수가 창밖에서 선배 재학을 부르며 "뭐 해요?" 라고 묻자, 재학은 "어, 뭐 하는데 왜?" 이러고

선희와 문수, 문수와 재학간의 대화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깊게 파고 또 파고 깊게 파봐야..."

끝으로 문화공간 아리랑 주인으로 나온 예지원씨가 "치킨 드실래요?"하면서 항상 치킨을 시켜요.
단언컨대 이 영화는 치킨과 함께 해야하는 영화랍니다. 영화 보다보면 칰욕이 솟는답니다ㅋㅋ


암튼 문수는 선희가 찾아왔었다며 재학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뜻밖에도 다음날 선희는 재학을 찾아갑니다.
선희가 세 남자를 만나는 모습들을 보며 선희는 대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자기 자신을 알려는 노력으로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구하는 모습 정도로 보이지만,
과연 그 세 남자는 선희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요? 그들의 말을 통해 선희는 자신을 알 수 있을까요?
선희 본인도 잘 모르겠는 자신을 과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우리 자신도 스스로를 모르는데 주변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걸까요? 



최교수와 선희는 창경궁에서 만나고 결국 선희는 최교수로부터 최종 추천서를 받아들게 됩니다.
처음에 썼던 추천서 내용보다는 선희에 관해 더 자세하고 좋은 내용들이 적혀 있어요. 선희 역시 마음에 들어하죠.
그리고 그때 선희는 전화를 걸어온 문수에게 창경궁이라는 걸 밝히게 되고, 최교수 역시 전화로 후배 재학에게 창경궁이라고 말하죠.

결국 세 남자는 창경궁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창경궁에 남겨지게 되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셋은 선희에 대한 자신들의 느낌을 주고 받는데 점점 그게 비슷해지죠.
그들이 말하는 선희가 정말 선희가 맞는지, 아니면 계속 말하다보니 한 곳으로 그냥 의견일치가 되어버리는 건지. 어쨌든 선희는 그들을 남겨둔 채 추천서를 가지고 떠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가끔은 웃음도 나오게 하는 그런 영화였어요. 이런저런 생각도 하게 만들고..


그 누구의 선희도 아닌 선희. 사실 그냥 좀 요물같은 선희. 우린 한 번 자신의 필터로 누군가를 정의내리면 그 사람이 뭘해도 딱 내가 처음에 판단한 그 필터를 통해 딱 거기까지만 보는 것 같아요. 자신의 필터가 뿌옇던 것인지 체크하는 건 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