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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The하기/독서꽝의 외침

[책] 피천득 - 인연




인연

피천득 지음




2015년 새해에 읽은 첫 책은 피천득 선생님의 너무나도 유명한 수필집 인연입니다.
좋은 글귀들이 많아 책을 읽지 않았어도 교과서 등을 통해 책에 있는 글귀들을 한 번은 접해보셨을 것 같아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들을 참 섬세하고 간결한 문장들로 표현하셔서 읽으면서 제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었어요. 물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문장들도 있었고요^^


두번째 소제목이 '서영이'인데 생전에 각별한 애정이 있으셨다는 따님의 성함이예요.
수필집에도 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적으셨고, 다음으로는 젊음에 관한 이야기들도 있었는데 그 누구보다 젊음을 잃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 수필집을 읽으면서 일생을 참 소년같이 사셨구나는 생각이 여러 차례 들었어요.


피천득 선생님께서 일전에 재직하셨던 서울대에서 마지막 강연을 하실 때 한 교수가 질문을 했다.
 "인생을 사시면서 가장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걸 버려도 나를 버릴 수는 없다는 그 자신에 대한 자존감,
물질은 포기해도 나는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일세."
 



위 일화를 읽고 저도 살면서 그 어떤 것보다 나 자신이 주체이며, 척도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왠지 여름과 어울릴 것 같아요. 밖은 너무 더워서 나가기 싫고 시원한 집에서 조용히 누워 읽면 좋겠다 싶어요. 문장 단위의 좋았던 구절들이 많지만 가장 제 마음에 들었던 수필은 '나의 사랑하는 생활'과 '송년'이었어요. 좋았던 몇몇 문장들만 간추려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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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발치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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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답다.
지나간 날의 애인에게서는 환멸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는 안타까운 미련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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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숙하다' 또는 '곱게 늙어 간다'라는 말은 안타까운 체념이다. 슬픈 억지다. 여성의 미를 한결같이 유지하는 약방문은 없는가 보다. 다만 착하게 살아온 과거, 진실한 마음씨, 소박한 생활 그리고 아직도 가지고 있는 희망, 그런 것들이 미의 퇴화를 상당히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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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가나 아니 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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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를 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하였다면 그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다.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 둔 보물의 세목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그리고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그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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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은 천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작자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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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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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미 늙었으나, 아낌없이 현재를 재촉하여 미래를 기다린다.
달력을 한 장 뜯을 때마다 늙어지면서도 나는 젊어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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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못 만나게 되면 우정은 소원해진다. 희미한 추억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나무는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르는 것이 더욱 어렵고 보람있다. 친구는 그때그때의 친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좋은 친구는 일생을 두고 사귀는 친구다. 우정의 비극은 이별이 아니다. 죽음도 아니다. 우정의 비극은 불신이다. 서로 믿지 못하는데서 비극은 온다.


송년 中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세월이 빨라서가 아니라 인생이 유한하여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새색시가 김장 30번만 담그면 늙고 마는 인생. 우리가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은 그다지 애석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세모歲暮의 정情은 늙어 가는 사람이 더 느끼게 된다. 남은 햇수가 적어질수록 1년은 더 빠른 것이다.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말을 고쳐서 "인생은 사십까지"라고 하여 어떤 여인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일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은 사십부터도 아니요 사십까지도 아니다. 어느 나이고 다 살만하다.

젊어, 정열에도 몸과 마음을 태우는 것과 같이 좋은 게 있으리오마는, 애욕·번뇌·실망에서 해탈되는 것도적지 않은 축복이다. 기쁨과 슬픔을 많이 겪은 뒤에 맑고 침착한 눈으로 인생을 관조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여기에 회상이니 추억이니 하는 것을 계산에 넣으면 늙음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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