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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끄)적/독거인의 삶

10년 후 나의 하루

 

 

 


중간고사 대체과제로 '10년 후 나의 하루'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해서 작성해가는 과제가 있었다.

재미있는 건 지금의 시간에서 10년 후를 두고 난 OO이 될 것이고 OO을 할 것이다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10년 후의 어떤 날 하루를 그 시간의 시점에서 현재형으로 쓰는 것이었다.

10년 후... 막연하지만 어쨌거나 10년 후를 상상하려면 지금껏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지 않고는 가늠할 수 없기에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서도 돌이켜 보는 시간이 되었다.




10년 후의 날들 중 내가 선택한 날은 내 생일이었고, 주요 골자는 역시나 캄보디아였다.

물론 앞으로 9년간 어떤 멋진 일들을 경험하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경험했던 일들 중 가장 행복했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은 캄보디아에서 지냈던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2주 전쯤 몇 달만에 캄보디아 친구와 통화를 한 것도 있고, 최근에 갑자기 날씨도 추워져서 캄보디아 생각이 많이 났었다.

(사실 추워지면 추워진다고 생각나고, 따뜻해지면 따뜻해진다고 생각나는 캄보디아다ㅎㅎ)  

암튼!!!! 2014년에 내가 상상한 2024년의 이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수 있도록 잊지말고 노력하자 얍얍!





< Remind Cambodia >

 




- 2024 6 27(내 생일)

나와 함께 끝까지 독신주의자로 남을 것을 자처하던 친구마저 올해 초에 결혼식을 올렸다. 어느덧 35살이 된 나, ‘이제 정말 나 혼자 남았구나’라는 생각에 연초에 한 가지 결심을 했다. 고향집을 떠나 서울에 올라와서 자취를 시작했던 20살부터 지금까지의 15년을 돌아보며 성인이 된 이후 내게 가장 소중한 기억들은 무엇인지 되짚어 봤고, 올해 맞는 내 생일에 그 소중한 기억을 리마인드 하고자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여러 기억들 중 내게 가장 소중한 기억은 단연 캄보디아였다. 캄보디아는 내 나이 22살에 해외봉사활동으로 처음 인연을 맺은 나라였다. 캄보디아의 시소폰 지역에서 보름간 열심히 땀 흘리면서 봉사도 하고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당시 내 또래 캄보디아 학생들과 현지 사람들로부터도 좋은 인상을 받아 한동안 ‘캄보디아앓이’를 하며 지냈었다.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서 정말로 1년 뒤 여름에 인턴생활을 하며 모은 돈으로 부모님께 말하지 않고 홀로 큰 배낭을 메고 보름간 태국-캄보디아로 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저지른 가장 큰 일탈이었다. 당시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지만, 그 추억은 여전히 나에겐 든든한 자산으로 남아있다. 20대 초반에 캄보디아와 함께한 혈기왕성했던 ‘나의 여름날’은 35살이 된 지금 돌이켜봐도 가장 돌아가고 싶은 기억이었다. 그렇기에 내 리마인드 배낭여행을 캄보디아로 정했고, 오늘이 바로 그 결심을 실천하기로 한 D-Day였다.



 

 



철저하게 싱글라이프를 즐기며 사는 나에겐 펜트하우스나 다름없는 아담한 땅콩집.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회사생활 때문에 도심을 오가는 내가 지칠 때마다 자연이 좋은 곳으로 떠나는 내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컨셉차.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땅콩집에서 나와 회사로 향했다. 평소와 다른 것이 있었다면 컨셉차에 혼자 탄 게 아니라 짐과 선물이 가득한 큰 배낭과 함께 탔다는 것. 그렇게 회사에 도착해서 우리 마케팅팀 직원들의 축하케이크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내가 일주일간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서류 작업과 몇 가지 업무를 직원들에게 인계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에는 일주일간 날 대신해 고생할 팀원들을 위해 맛있는 식사를 대접했다. 팀원들은 팀장인 내가 일주일간 회사에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점심식사 후 곧장 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총 18kg이 되는 큰 배낭과 짐들을 부치고서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12년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캄보디아에 갔을 때만 해도 인천에서 씨엠립까지 5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지금은 3시간이면 충분하게 됐다. 고속버스 타고 내 고향 군산에 내려 가는 시간과 똑같다니 세상 참 좋아진 셈이다. 어쨌거나 비행기에 올라탄 뒤 밖을 내다보며 제일 먼저 내가 인화한 사진들을 다시 한 번 감상했다. 바로 20대 초반에 캄보디아에 있었던 내 모습과 레아싸, 레아끄나를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과 찍었던 사진들이다. 12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친구인 소티아비의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소티아비의 조카인 레아싸, 레아끄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사진 속 어린아이 모습의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을까? 소티아비의 남편과 자식들은 어떤 모습일까, 소티아비의 부모님들은 아직도 날 기억하고 계실까? 등등. 인화한 사진들을 보며 날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과 새롭게 만나게 될 사람들, 그리고 어떻게 변해있을 지 궁금한 시소폰의 여러 풍경들이 머릿속에 아른거렸고, 기대와 설렘으로 내 마음을 점점 더 부풀게 만들었다. 


오후 4시반에 씨엠립 공항에 도착해서 내가 가야 할 시소폰으로 다시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기에 걸음을 재촉하며 입국장을 나왔더니 소티아비의 가족들이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몰라보게 변한 모습에 서로 너무 놀라 한동안 말도 못하고 웃기만 하다가 이내 끌어안고 반가워했다. 어린 시절 모습의 레아싸, 레아끄나는 훌쩍 커서 이제 숙녀가 다 된 모습이었다. 어릴 때처럼 여전히 날 보고 부끄러워서 악수만 하고 계속 미소만 보였다. 



 

 


그렇게 소티아비 가족의 깜짝 마중으로 나의 <Remind Cambodia>는 벅찬 시작을 알렸다. 봉고차를 타고 1시간을 가량 달려 시소폰 지역에 도착했다. 2024년이 된 지금도 시소폰은 시골이어서 그런지 내가 2012년에 왔을 때랑 비교해 볼 때 흙으로 되어 있던 도로가 시멘트로 바뀐 것과 숙박시설이 몇 개 생긴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소티아비는 이날부터 나를 위해 며칠간 자신의 친정에서 묵기로 했다. 2012년에 우리가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 역시 어김없이 저녁 장을 보러 시장에 나갔다. 생선과 야채들, 그리고 후식으로 먹기 위해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망고스틴을 사왔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레아싸, 레아끄나와 나, 소티아비가 부엌에서 음식들을 장만했고 소티아비의 부모님과 오빠, 언니는 마당에 자리를 깔고 꼬마아이들을 돌보셨다. 


12년 전에 내가 홀로 이곳을 찾아 왔을 때는 마지막 날에 한국음식을 해주고 싶었어도 재료가 상할까봐 준비해오지 못했고, 또 냉장고나 가스레인지가 없어서 요리다운 요리를 선보이지 못한 채 짜파게티만 10개를 끓였던 기억이 생생해 그 이야기를 하며 우린 또 한 번 웃었다. 그리고 오늘 난 단단히 벼르고 왔다는 말과 함께 김치전과 된장찌개를 선보였다. 3명의 조수를 거느린 쉐프가 된 것이다. 소티아비가 김밥을 만들 줄 알아서 아이들에게는 김밥을 먹게 했다. 소티아비의 부모님과는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해 소티아비가 통역을 해줬지만 그 외의 사람들과는 원래 자주 봐왔던 사이처럼 거리낌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저녁식사 후 망고스틴까지 먹고 나니 어느덧 8시가 되었고, 소티아비와 나, 레아싸, 레아끄나는 2층에 올라가 차례로 누워서 밖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조금 있다가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소티아비와 나의 또 다른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다들 결혼해서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데도 와주었던 것이다. 흘러온 세월은 어쩔 수 없기에 겉모습은 모두 30대가 되었지만, 서로 주고 받은 눈빛만으로도 20대 초반의 어리고 순수했던 우리들의 그 시간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잠시의 만남을 뒤로하고 친구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지금 소티아비와 레아싸, 레아끄나와 함께 서로에게 편지를 쓰기로 해 각자 흩어져 있는 중이다. 편지의 마지막에 뭐라고 적을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적었다. “이번에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언제 다시 시소폰에 오겠다고 약속할 순 없지만, 꼭 너희들을 한국에 초대하겠다는 것만은 약속하고 싶어. 우리 다음엔 한국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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